작품: 속초에서의 겨울 |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펭
책 소개
한국계(프랑스 아버지-한국 어머니)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펭의 데뷔작. 불어나 독어로 쓴 첫 작품에 한해 2년마다 선정되는 스위스의 문학상 '로베르트 발저상'을 수상하였으며 프랑스에서는 '문필가협회 신인상'을 수상했다.
소설은 혹한으로 모든 것이 느려지는 속초를 배경으로 유럽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혼혈의 젊은 여인과 고향 노르망디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영감을 찾으러 온 중년의 만화가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바다 위에 떨어지는 눈송이처럼 섬세하게 그려냈다.
위 소개 글은 책에서 인용하였다. 여기서 살펴볼 부분은 두 번째 문장에 쓰인 '첫 작품에 한해'라는 문구이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이것은 일본어 투 표현을 직역한 흔적이다. 쉽게 '첫 작품만'이라고 말해도 충분히 뜻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에 한해'가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그만큼 일본어 투 표현에 길든 탓이다. 그리고 사회 분위기상 순우리말보다 한자어가 더 유식하고 격식 있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특히 각종 공식 석상에서 쓰는 어휘를 보면 쉽게 쓸 수 있는 말도 최대한 한자어로 바꾸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 소개
1992년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 수아 뒤사팽은 파리와 서울, 스위스의 포렌트루이를 오가며 자랐다. 비엔 스위스 문학연구소에서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스위스에 살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
결국, 글쓰기는 내가 현실에서 찾아내지 못한 거처를 창조해내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경계 너머에서 모든 공간이 동일할 수 있고 모든 상상이 가능한 그런 거처 말이다. 그 거처에서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을 젊은 여인, 내가 일상을 통해 알고 싶었던 만큼 한국을 속속들이 아는 젊은 여인을 상상했고, 그 상상은 『속초에서의 겨울』로 점점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두 번째 문장을 보면 '모든 공간이 동일할 수 있고'라는 표현이 있다. 이 역시 굳이 '동일'이라는 한자어를 쓸 필요가 없다. 그냥 '같을'이라고 쓰면 된다. 참고로 '동일'은 행정 순화용어로 지정되었다. 그만큼 남용하는 사례가 많았을 것이다.
또 짚어야 할 점이 마지막 문장에 쓰인 '구체화되었다'라는 말이다. 되도록 한자 접미사 '~화'는 쓰지 않는 것이 좋지만 써야 할 때는 '구체화되었다'가 아니라 '구체화하였다'로 써야 한다. 주어가 '상상'으로 인격이 아니어서 수동형이 맞을 것 같지만, 이는 오해이다.
사전에서 '구체화하다'를 찾아보면 첫 번째 뜻에 '구체적인 것으로 되다. 또는 그렇게 만들다'라고 나와 있다. 즉 '하다'라는 능동태를 쓰더라도 수동의 뜻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사전에 실린 예문을 보면 뜻이 더욱 명확해진다. 여기서 주어는 '의식'으로 인격이 아니지만, 서술어는 '구체화하고'가 쓰였다.
'이번 설문 결과에서 보듯이 신세대의 남녀평등 의식이 실생활에서까지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두 번째 뜻도 같은 맥락을 담고 있다. '계획 따위가 실행되다. 또는 그렇게 만들다.' 예문으로는 '새 경영 방식이 구체화하다.', '총선 절차를 구체화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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